힘을 주는글

나는 배웠다

비룡승천 2020. 7. 15. 00:04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 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두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두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슬품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아픔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트라피스트 수도회 출신으로 예수의 작은 형제회를 설립한 샤를르 드 푸코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

나는 배웠다----양광모 (한 번은 시처럼 살아야 한다중에서)

 

나는 몰랐다

인생이라는 나무에는 슬픔도 한 송이 꽃이라는 것을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펄럭이는 날개가 아니라 펄떡이는 심장이라는 것을

진정한 비상이란

대지가 아니라 나를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인생에는 창공을 날아오르는 모험보다

절벽을 뛰어내려야 하는 모험이 더 많다는 것을

절망이란 불청객과 같지만

희망이란 초대를 받아야만 찾아오는 손님과 같다는 것을

12월에는 봄을 기다리지 말고

힘껏 겨울을 이겨내려 애써야 한다는 것을

친구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도와줘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군가를 사랑해도 되는지 알고 싶다면

그와 함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된다는 것을

어떤 사랑은 이별로 끝나지만

어떤 사랑은 이별 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시간은 멈출 수 없지만

시계는 잠시 꺼둘 수 있다는 것을

성공이란 종이비행기와 같아

접는 시간보다 날아다니는 시간이 더 짧다는 것을

행복과 불행 사이의 거리는 한 뼘에 불과하다는 것을

삶은 동사가 아니라 감탄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인생이란 결국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일이라는 것을

인생을 통해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

신뢰를 쌓는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인생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렸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문제임도 배웠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뿐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이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또 나는 배웠다.
인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무엇이 아무리 얇게 베어난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것을...
어느 한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의 만남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야할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들이 진정한 영웅임을 나는 배웠다.



사랑을 가슴속에 넘치게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나타낼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정한 우정은 끊임없이
두터워진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사랑도 이와 같다는 것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서 내 모든 것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나는 배웠다.



또 나는 배웠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때때로 나를 아프게 한다 해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때론
내가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해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오로지 나 자신의 책임인 것을 나는 배웠다.



또 나는 배웠다.
우리 둘이 서로 다툰다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인간 자신이 먼저임을 나는 배웠다.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보더라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그리고 앞과 뒤를 계산하지 않고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데서 앞선다는 것을....



내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에 의해 내 인생의 진로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또 배웠다.
이제는 더 이상 친구를 도울 힘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친구가 울면서
내게 매달린다면 여전히 그를 도울 힘이
내게 남아 있음을 나는 배웠다.



글을 쓰는 일이 대화를 하는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 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너무 아끼는 사람이 먼저
이세상을 빨리 떠난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과
나의 믿는 바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일은 엄격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
또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의
모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 오마르 워싱턴 -

=========================================

글은 일단 쓰고나면 자기의 소유가 아니다. 독자들의 소유다.'

이게 나의 글에 대한 개인적인 신념이다.

그런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 시도 나의 작품이라고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헌법에 앞서 지적 소유권 보호법을 제정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카우보이 기질에서 나온 발상이었으리라!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발명은 자유의 산물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는 페트릭 헨리의 피맺힌 절규의 주춧돌 위에 세워진 미국,

그 국민들에게 당연한 논리다.

그러니 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미국은 전기, 자동차,

비행기를 최초로 만들어낸 나라이다.

이 발명품들에 대한 특허비 덕분에 미국은 영국, 독일, 불란서 등 럽 열강들을 제치고

하루 아침에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또, 빌 케이트가 윈도우 프로그렘 발명품 하나로 역사가 백년이 넘는 포드 자동차와

세계 자동차계의 황제였던 지엠 자동차를 굴복시키고 불과 몇 년만에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특허권 때문이었다.

미국은 가히 지적 특허권 천국의 나라다.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도

지적 소유권 때문이다. .

문제는 지적 소유권에 돌아가는 보상(Return Compensation)의

 정도다. 적어도 내 개인적 견해로는 그 보상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 착수 휭포의 수준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미국사회의 빈부격자와 세계 경제 선진국들과

 약소국들과의 국부격차를 가속화 시키는 주된 악의 요인으로 전락해버렸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사회에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라는 단어는 창조주 신에 속하는 개념이다. 구약 전도서에 나오는 솔로몬 왕의 탄식

"해 아래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은 없다" 은 100%가 맞는 말이다.

인간들의 발명품이라는 것들은 그 모두가 타인들이 축적해온 지혜와 지식을 이용한

양식과 형태의 변화에 불과하다.

그런면에서 그 발명품을 만들어 낸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되어온 인류의 지식이고 지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철학이나 사상에 관하는 한 그렇다.

오래 전에 미국 유명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 교수와 노자철학에 대해서 심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예수, 붓다, 노장자, 쏘크라테스... 등

 소위 인류의 성현들은 지적 소유권을 주장한 적이 없었다.

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사상으로 나름데로 요리를 해서

대중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 밥을 먹고사는  학자들이다.

예를 들어 우리 어머님은 소학교 졸업장밖에 없는 분이었다.

평생 노장자 책을 읽어본 적도 없으셨고, 노장자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분이셨다.

그러나 그분은 평생 "물처럼 살아라" 는 말을 입에 달고다니셨고, 또 실제로 그런 삶을 살다

가신분이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가훈처럼 물의 철학을  가르치쳤다.

그런데 내가 그런 말을 남에게 건내면서   무슨 대학 교수의 논문 몇 장 몇 페이지에서

인용했다고  밝혀야 한단 말인가?

 "원수를 사랑하라" 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가르침해도  그렇다.

그 말은 기독교의 특허품이 아니다. 평생 교회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으셨던 우리 어머님께서도

"원수를 은혜로 갚으라" 는 말씀을 내 귀가 사리도록  되풀이 하며 가르치셨다.

 

이야기가 옆 길로 샛지만, 암튼 나는 이 작자 미상의 시를 읽을 때 마다

내가 이 시를 쓰고 있는 심정으로 읽곤 한다.

배움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티테커는 인간은 주어진 완성품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한 과정이라고 주장했었  다. 인간은 Being 아니라 Becoming이라는 의미이고,

인간은 배움의 한 과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걸어가면 그중 한명은 반드시 배움을 주는 스승이다" 는

공자의 주장은 맞는 말이 아니다.

공자가 "나를 제외한 두명이 다 배움을 주는 스승이다" 라고 했어야 헀었다.

어찌 인간들만이 배움을 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들보나 훨씬 더 위대한 스승은 자연이고, 순간순간  죽어가는 시간들이다.

.

일주일 가까이 날씨가 여름 날씨처럼 무덥더니

이틀간 가을 비가 내리고 난 후 어제부터 기온이 떨어져 선선한 가을 날씨다.

인디언 섬머였다고들 한다. 본격적으로 추워지지 전에 신이

 내려주시는 축복!

나이를 폭설을 경험했던 햇수로 계산했던 미국 인디언들의

 아름답고 섬세한 정서에서 비롯한 경외의 표현이리라!

 

10/13/2018 아침 메모

버지니아 슾속에서

박평일

============================================================

샤를르 드 푸코 :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사치와 방랑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샤를 드 푸코. 학술 조사차 갔던 모로코 탐험에서 그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된다. 주님께 돌아온 그는 예수님의 삶을 좇는 것이 자신의 성소임을 깨닫고 당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여려지던 사하라 사막으로 향한다.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는 순간 저는 오로지 그분만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https://blog.naver.com/jesusdhl/80030817485

 

샤를 드 푸코 수도사/신부

샤를르 드 푸코 근대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수도자였던 샤를르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는 185...

blog.naver.com

 

'힘을 주는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에보는 공세리성당 #새해첫날 공세리성당  (0) 2022.01.07
#새해첫날공세리성당  (0) 2022.01.07
인생거울  (0) 2020.07.12
봄의 정원으로 오라  (0) 2020.06.11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0) 2020.06.08